수련 체험담
과민성대장염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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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범 작성일06-09-10 조회5,994회 댓글4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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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개편작업을 위해 글을 정리하다 보니 과민성대장염에 대한 사례가 없더군요.
그래서 제 경험을 써서 여기에 올리고 홈페이지에도 실을까 합니다.
설사가 심한 분에게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42년 전 초등학교 1학년 가을에 설사한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심각한 경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님 회사에서 수유리로 가을 소풍을 갔는데, 갑자기 배가 싸르르 아파 화장실을 찾았다. 그런데 화장실에 당도하기도 전에 바지에 싸고 말았다. 얼마나 창피한지 몰랐다.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으로 가 시냇물로 닦아냈지만, 냄새는 다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어울려서 먹고 마시고 하지도 못하고 혼자 바위 위에 앉아서 집에 갈 시간만 기다렸다.
대학에 다닐 때 살던 집은 재래식 변소를 쓰고 있었다. 내가 변을 본 다음 바로 할머님이 들어가셨는데, 할머님 말씀이 내 설사가 너무 심각하다고 하셨다. 그냥 보통 설사가 아니라 거품똥을 쌌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머님의 권유로 집안에서 잘 아는 한의사의 진맥을 받았는데, 심장이 약하고 다른 이상은 없다고 하셨다. 지금은 2번 방석숙제를 3주일간 해서 말끔히 사라졌지만, 부정맥 증세였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아랫배는 차가웠고 설사 또한 계속됐다. 매일 기운은 없고 차를 타거나 집에 들어가면 졸리기만 했다. 한여름에도 두꺼운 이불을 덮지 않으면 추워서 잠을 자지 못했다. 그때에는 설사를 하니까 많은 영양분을 밖으로 내보내기 때문에 이런 증세가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했다. 병원에 가면 과민성이라면서 약을 주는데,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이때부터 설사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누가 하는 소리가 아침을 안 먹으면 장이 편안해진다고 해서 아침을 먹지 않게 됐다. 3주 정도는 공복감에 시달렸지만, 이후로는 오히려 아침을 먹으면 신트림이 나고 속이 쓰렸다. 아침을 안 먹으니까 증세가 조금 덜해지는 것 같기는 했다.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두 끼를 먹게 됐다.
장모님께서 몸에 열을 내는 데 좋다고 하시면서 강화도에서 엄지손가락보다 큰 수삼(水蔘)을 사다 주셨다. 아침저녁으로 두 뿌리씩 몇 달간을 씹어 먹어 보았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었다. 어떤 사람이 구연산이 장에 좋다고 해서 그 시디 신 하얀 구연산 결정을 물에 타서 장복해 보기도 했지만, 역시 별 효과가 없었다. 밤꿀도 먹어 보았다. 마찬가지로 효과가 없었다. 진짜 밤꿀은 맛이 달지 않고 쓰기만 하기 때문에 아들들은 한번 입에 대 보고는 다시는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운동을 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아침마다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불광1동에 집이 있었는데, 집에서 가까운 향림담이라는 약수터를 매일 올랐다. 가서 20리터짜리 물통에 물을 받아서 지고 오는 것이 아침 일과였다. 처음에는 왕복 50분 정도 걸렸는데, 이력이 붙으니까 27분 정도로 시간이 줄어들었다. 거의 뛰어 올라갔다가 뛰어 내려오는 수준이 됐다. 6개월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짓을 하니까 조금 좋아지는 것 같기는 했다.
1989년에는 주체사상 총서 네 권을 출판하고 수배를 받게 됐는데, 그때 나는 주사파는 아니었다. 오히려 단파 라디오로 북한 방송을 듣고는 앵무새처럼 외워 대는 주사파는 주체적인 것이 아니라 반(反)주체적이라고 보고 있었다. 그러나 주체사상에 대해 나와 있는 책이 형편없는 수준이라 본격적으로 주체사상을 해설한 책을 내야 제대로 알고 제대로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 책 네 권을 내고 2년간 수배(그때에는 ‘도바리’라고 했다) 생활을 하게 됐다.
이때 냉방버스가 처음 시내를 주행하게 됐는데, 이것이 문제였다. 찬바람을 쏘이면 바로 설사가 나오려고 했다. 급하게 버스를 내려 어떤 건물이라도 들어가 볼일을 보아야 했다. 참으로 고역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복대를 차고 다니는 것이었다. 복대를 차고 있으면 배가 따뜻해지므로 찬바람을 맞아도 설사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여름 뙤약볕 밑에서 복대를 차고 다니려니 고역도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니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돌아다녀야 했다.
그러던 내게 작년부터 몸의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허리가 서기 시작하면서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하는데, 이제는 뜨거운 것이 싫어졌다. 예전에는 설사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했고 여름에 찬물도 마시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이스크림을 다섯 개나 먹어도 아무렇지도 않다. 겨울에도 차가운 물이 좋다. 그래야 속이 시원하고 상쾌해진다. 여름에도 요를 깔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자던 것이 이제는 맨바닥에 아무 것도 덮지 않고 자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싫어하던 에어컨 바람이 이제는 너무나 반가운 존재가 됐다.
내 몸의 변화는 공명이 틔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걷기숙제와 1번 방석숙제를 꾸준하게 한 결과 1자로 굽었던 허리가 만곡을 긋게 됐고 사라졌던 엉덩이가 볼록하게 살아났다. 몸이 쭉 펴지니까 가슴에서만 왔다 갔다 하던 얕은 호흡이 아랫배까지 쑥 내려오는 깊은 호흡으로 바뀌었다. 호흡이 깊어지니까 몸에 필요한 산소를 충분히 흡수하게 됐다. 산소가 충분하니 당을 태울 수 있게 됐다. 당이 잘 타니 열이 난다.
장기가 처져 장을 누르니 장이 굳어 제대로 연동운동을 하지 못했는데, 처져 있던 장기가 위로 올라가니 대장이 풀리면서 제대로 된 연동운동을 하게 됐다. 그래서 잡아 주어야 할 때 잡아 줄 수 있게 되니 설사가 안 나온다. 이제는 아무리 차가운 것을 먹어도 설사가 나지 않는다.
뿐만이 아니다. 밥만 먹으면 바로 설사를 하는 증상도 있었다. 심할 때는 밥숟가락을 놓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해야 했고, 늦어도 30분 안에는 꼭 화장실에 가야 했다. 이런 증세는 매일 아침 일어나 화장실에 갔을 때 설사를 하는 증세가 사라지고 나서도 6개월 이상은 더 간 것 같다. 이후 허리가 더 제대로 세워지면서 그 빈도수가 점차 줄어들더니 마침내 밥 먹고 바로 화장실 가는 일이 이제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제 경험을 써서 여기에 올리고 홈페이지에도 실을까 합니다.
설사가 심한 분에게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42년 전 초등학교 1학년 가을에 설사한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심각한 경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님 회사에서 수유리로 가을 소풍을 갔는데, 갑자기 배가 싸르르 아파 화장실을 찾았다. 그런데 화장실에 당도하기도 전에 바지에 싸고 말았다. 얼마나 창피한지 몰랐다.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으로 가 시냇물로 닦아냈지만, 냄새는 다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어울려서 먹고 마시고 하지도 못하고 혼자 바위 위에 앉아서 집에 갈 시간만 기다렸다.
대학에 다닐 때 살던 집은 재래식 변소를 쓰고 있었다. 내가 변을 본 다음 바로 할머님이 들어가셨는데, 할머님 말씀이 내 설사가 너무 심각하다고 하셨다. 그냥 보통 설사가 아니라 거품똥을 쌌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머님의 권유로 집안에서 잘 아는 한의사의 진맥을 받았는데, 심장이 약하고 다른 이상은 없다고 하셨다. 지금은 2번 방석숙제를 3주일간 해서 말끔히 사라졌지만, 부정맥 증세였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아랫배는 차가웠고 설사 또한 계속됐다. 매일 기운은 없고 차를 타거나 집에 들어가면 졸리기만 했다. 한여름에도 두꺼운 이불을 덮지 않으면 추워서 잠을 자지 못했다. 그때에는 설사를 하니까 많은 영양분을 밖으로 내보내기 때문에 이런 증세가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했다. 병원에 가면 과민성이라면서 약을 주는데,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이때부터 설사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누가 하는 소리가 아침을 안 먹으면 장이 편안해진다고 해서 아침을 먹지 않게 됐다. 3주 정도는 공복감에 시달렸지만, 이후로는 오히려 아침을 먹으면 신트림이 나고 속이 쓰렸다. 아침을 안 먹으니까 증세가 조금 덜해지는 것 같기는 했다.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두 끼를 먹게 됐다.
장모님께서 몸에 열을 내는 데 좋다고 하시면서 강화도에서 엄지손가락보다 큰 수삼(水蔘)을 사다 주셨다. 아침저녁으로 두 뿌리씩 몇 달간을 씹어 먹어 보았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었다. 어떤 사람이 구연산이 장에 좋다고 해서 그 시디 신 하얀 구연산 결정을 물에 타서 장복해 보기도 했지만, 역시 별 효과가 없었다. 밤꿀도 먹어 보았다. 마찬가지로 효과가 없었다. 진짜 밤꿀은 맛이 달지 않고 쓰기만 하기 때문에 아들들은 한번 입에 대 보고는 다시는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운동을 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아침마다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불광1동에 집이 있었는데, 집에서 가까운 향림담이라는 약수터를 매일 올랐다. 가서 20리터짜리 물통에 물을 받아서 지고 오는 것이 아침 일과였다. 처음에는 왕복 50분 정도 걸렸는데, 이력이 붙으니까 27분 정도로 시간이 줄어들었다. 거의 뛰어 올라갔다가 뛰어 내려오는 수준이 됐다. 6개월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짓을 하니까 조금 좋아지는 것 같기는 했다.
1989년에는 주체사상 총서 네 권을 출판하고 수배를 받게 됐는데, 그때 나는 주사파는 아니었다. 오히려 단파 라디오로 북한 방송을 듣고는 앵무새처럼 외워 대는 주사파는 주체적인 것이 아니라 반(反)주체적이라고 보고 있었다. 그러나 주체사상에 대해 나와 있는 책이 형편없는 수준이라 본격적으로 주체사상을 해설한 책을 내야 제대로 알고 제대로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 책 네 권을 내고 2년간 수배(그때에는 ‘도바리’라고 했다) 생활을 하게 됐다.
이때 냉방버스가 처음 시내를 주행하게 됐는데, 이것이 문제였다. 찬바람을 쏘이면 바로 설사가 나오려고 했다. 급하게 버스를 내려 어떤 건물이라도 들어가 볼일을 보아야 했다. 참으로 고역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복대를 차고 다니는 것이었다. 복대를 차고 있으면 배가 따뜻해지므로 찬바람을 맞아도 설사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여름 뙤약볕 밑에서 복대를 차고 다니려니 고역도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니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돌아다녀야 했다.
그러던 내게 작년부터 몸의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허리가 서기 시작하면서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하는데, 이제는 뜨거운 것이 싫어졌다. 예전에는 설사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했고 여름에 찬물도 마시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이스크림을 다섯 개나 먹어도 아무렇지도 않다. 겨울에도 차가운 물이 좋다. 그래야 속이 시원하고 상쾌해진다. 여름에도 요를 깔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자던 것이 이제는 맨바닥에 아무 것도 덮지 않고 자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싫어하던 에어컨 바람이 이제는 너무나 반가운 존재가 됐다.
내 몸의 변화는 공명이 틔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걷기숙제와 1번 방석숙제를 꾸준하게 한 결과 1자로 굽었던 허리가 만곡을 긋게 됐고 사라졌던 엉덩이가 볼록하게 살아났다. 몸이 쭉 펴지니까 가슴에서만 왔다 갔다 하던 얕은 호흡이 아랫배까지 쑥 내려오는 깊은 호흡으로 바뀌었다. 호흡이 깊어지니까 몸에 필요한 산소를 충분히 흡수하게 됐다. 산소가 충분하니 당을 태울 수 있게 됐다. 당이 잘 타니 열이 난다.
장기가 처져 장을 누르니 장이 굳어 제대로 연동운동을 하지 못했는데, 처져 있던 장기가 위로 올라가니 대장이 풀리면서 제대로 된 연동운동을 하게 됐다. 그래서 잡아 주어야 할 때 잡아 줄 수 있게 되니 설사가 안 나온다. 이제는 아무리 차가운 것을 먹어도 설사가 나지 않는다.
뿐만이 아니다. 밥만 먹으면 바로 설사를 하는 증상도 있었다. 심할 때는 밥숟가락을 놓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해야 했고, 늦어도 30분 안에는 꼭 화장실에 가야 했다. 이런 증세는 매일 아침 일어나 화장실에 갔을 때 설사를 하는 증세가 사라지고 나서도 6개월 이상은 더 간 것 같다. 이후 허리가 더 제대로 세워지면서 그 빈도수가 점차 줄어들더니 마침내 밥 먹고 바로 화장실 가는 일이 이제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댓글목록
황금희님의 댓글
황금희 작성일대장이 안 좋거나 , 내 옆의 대장암 환자에게도 알려야겠습니다.
이현아님의 댓글
이현아 작성일제가 아는 분도 비슷한 증세라~ 잘 다니는 곳 열린 화장실이 있는 건물을 외우고 다니는 정도 였습니다. 몸살림 운동을 하고 좋아졌답니다. ^^
정항섭님의 댓글
정항섭 작성일
본인도 1번방석숙제를 8개월하였더니 설사와변비가 오락가락 하였는데 (과민성대장염)
만히 좋아진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양패밀리님의 댓글
양패밀리 작성일흠...
